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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 3주차 : 추억박스 정리하기

2019. 9. 23. 17:53Log

오늘의 전리품

 

나에겐 추억박스라는게 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껏 4번여의 걸친 이삿짐에 늘 끼어있던 그것은 나의 성장과정 일부분이라 생각드는 것들을 모아두는 분홍색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박스인데 안에는 내가 아기때 엄마가 적은 육아수첩, 인식팔찌부터 중·고등학교때 교복, 졸업장, 상장이나 기타 학생때 기록된 사항 그리고 성인되서의 일기나 작업물등 물건들이 있었다. 나는 이 박스에 있는 내용물들을 정말로 내 성장을 돌아볼수 있는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방안에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것보다는 한곳에 담아놓는것이 더 소중하게 추억을 모아놓는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인생은 시간이 지나수록 남기는것이 더 많아지고 결국 박스의 뚜껑이 안닫힐 정도로 가득차 어떻게든 구겨넣어놓고 최근에는 박스에 못넣는 것들은 내 방에 일부분 두는것으로 해두었다. 

그래서 늘 찝찝함이 남아있긴했다. 추억이라고는 하지만 잘 안꺼내볼뿐더러 앞으로 채워질게 더 많을텐데 박스를 하나 더 늘릴수도 없고 가끔 지하창고에 있을 그 추억박스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곰팡이가 슬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그 추억박스를 과감히 정리해보기로 했다. 사실 다 들고와서 뒤집어 엎을려했는데 28년의 그 추억들이 너무 무겁다보니 창고 안쪽 깊숙히 있어서 도저히 꺼낼수 없을거같았다. 급한대로 추억박스 위에 잔뜩 쌓여있는 물건만 스윽치우고서 그 자리에서 쪼그려앉아 손에 집히는것 하나하나 챙겨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추억박스를 정리한것이 아마 2년전 이사오기 전이었을거다. 그 후에생기는 '추억들'인 일기장과 달력들을 그냥 억지로 구겨넣기만하고 정확히 어떤게 들어있는지 기억조차 희미했는데 박스를 열어보고 놀랐던것중 하나가 아직도 고등학생때 교복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번 정리때 버린줄 알았고 게다가 고등학교 졸업이후에는 세탁할 일도 없었을테니 설령 추억이라도 찝찝해서 입지도 않을것인데 왜 가지고 있었지? 싶었다. 게다가 비교적 오래가지고 있던 물건들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등학생때 사진도 많이 찍었던 터라 눈만 감아도 그 디자인을 기억하기엔 충분해 이 이상 가지고 있을필요가 없었다. 초·중학생때의 물건들은 사실 추억할만한것들이 많지 않아서 그때그때 잘 내놨지만 고등학교때부터의 추억은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나보다. 어쨌든 오랜만에 본 추억의 박스안에는 이런것도 있었어? 하는것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첫 해외여행의 기억들이 담긴 일지와 루트가 적힌 프린트물들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 해외여행에서 얻어온 피부병때문에 보험사에 청구하기위해 받은 병원 처방전은 왜 갖고 있는 것이었을까. 봉투에 어디어디 피부과라 적혀있어 설마 했는데 진짜로 그것들까지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볼것도 없이 내놓았다. 거기에 여행지에서 산 잡지나 엽서도 박스안에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그때 여행가서 사왔던것들이 생각났고 여기에 있으면 사용못하고 잊어버리고 있을거였음 왜 사놨을까 하면서 꺼내놨다. 

이번 추억박스에서 정리한것은 그동안 여행가서 들고온 지도나 팜플렛(이제 이런건 안챙기거나 그 자리에서 사진만 찍어온다), 여행중 루트를 적어놓은거, 여행때 산 물건들 영수증, 여행지 스탬프, 전 직장에서 적은 일일업무일지(생각보다 성실하게 작성했고 예전에도 이런걸 적었구나 싶었지만 이젠 필요없다)와 교복, 졸업한 학교이름이 박힌 상장케이스였다. 정리할려고 들고왔지만 아직 아쉬워 다시 추억의 박스에 들어간것도 있고 내놓고서도 아쉬운마음이 들어 한번씩 다시 들쳐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안보고 잘 살아왔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멀쩡한 종이류는 이면지로 쓰기로하고 귀여운 파우치, 엽서와 편지지, 스티커는 사용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 나뒀다. 오랜시간 밀폐된 용기에 있어 곰팡이가 나진 않을까해서 햇빛에 오늘의 전리품들을 내놓으면서 소중히 다시한번 사용하기로 마음 먹으며 30살이 되는 해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10년치 일기장을 모두 버리는 시도를 하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