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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아닌 미니멀라이프 실천하기

2019. 9. 19. 12:47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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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불안하거나 하면 안 되는 짓 같은 걸 걱정하면서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걱정이 되면 그만두거나 백업을 해놨어야 했는데. 열 받지만 누굴 탓하겠나. 2시간 동안 쓴 글이 홀연히 날아가버려서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겨우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본다. 그러니 글도 기억나는 대로 미니멀하게. 

나와 미니멀리즘의 첫 만남은 스티븐잡스가 애플의 스큐어모피즘 아이콘에서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면서였다. 그 후부터 유행처럼 번진 미니멀리즘은 나에게는 오히려 '지나치게 과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트렌드라며 따르면서도 내심 스큐어모피즘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니멀리즘과 미니멀라이프 같은 그 심플한 단어는 나에게 되려 부대끼는듯한 느낌이 들어 피했고 모르는척했다. 맥시멀리스트가 되면 나의 내면 속 가난도 채워질거라 생각하고 소비를 즐겼지만 부피가 있거나 비싼 물건을 살 돈은 아깝다고 생각한 나는 다이소에서 스티커나 파우치류를 사재꼈다. 그러나 집에와서 풀어보면 동일한 스티커를 사는 경우도 있었고 또 그런 과정에서 다시한번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나는 스트레스를 풀 목적으로 자잘한것을 소비하는 찌질리스트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어린시절에 책장과 책상이 h형으로 결합된 책상을 많이 썼을텐데 이 책상에 딸려있는 두개의 서랍은 가로폭이 좁고 깊이가 깊어 수납하기에는 영 꽝이다. 어릴때부터 정리하는것을 좋아했던 나는 테트리스하듯 이 서랍에 물건을 넣는걸 좋아했는데 곧 필요한 물건이 있을때 위에서부터 다시 헤집고 꺼내야하는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또 그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티백이나 문화상품권류를 나중에 꼭 특별한 순간에 쓰겠다 다짐하고는 짐사이에 끼워놓고 어디에 놓은지 잊어버리고 사용기간이 다되어 버리게 되고 물건이란 사용할 적절한 때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든 쟁여놓는 엄마 밑에서 자랐고 맥시멀리스트를 꿈꾸기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유년시절부터 돌이켜보면 나는 결국 미니멀리스트로 귀결될 자질을 가지고 성장했다.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지않아 방에서 뒹굴거릴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그렇게 방에 누워있는데 문득 선반위에 걸린 액자가 지겹다고 느껴졌다. 심지어 많이 사용해서 뒷면의 고리가 떨어진 상태여서 이 이상 사용하기도 힘들다. 시선을 돌려 책장을 봤더니 이번에는 몇년전 도서전에서 받아온 책들이 보였다. 언제든 읽을수 있다는 생각에 2년넘게 펼쳐보질 않았다. 그 다음엔 내가 방을 꾸민다고 걸쳐놓은 앵두전구가 보였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방안에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넘쳤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시작한게 그동안 방치해놓은 책을 읽는것이었다. 한때는 서재가 있는 나의 방을 꿈꾸기도 했지만 한번읽은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고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있을만큼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도 굳이 아닌데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읽은 책은 알라딘중고문고에 팔거나 도서관에 기증했다. 겨우 10권정도만 책장에서 빠져나갔는데 뭔가 후련했다. 그 다음에는 여름옷을 정리했다. 그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시작한 여름 옷정리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안입은 옷들은 수거함에 내놨다. 그리고 서랍장을 열어 그동안 방치해놓은 미술물품, 캔들재료, 화장품, 공병, 전자기기, 음반 등을 보면서 계획을 써내려갔다. 정리 초반에는 엄마가 정신병걸린거 아니냐 할정도로 자다일어나서 정리만 했고 정리만 생각했다. 약간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했다. 내가 현실에서 하나의 도피처를 삼은게 아닐까 싶기도했다. 그러나 내 방에 짐이 정리될수록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과 욕심들이 사라져갔다. 마치 디톡스를 하는것처럼 내 방에 있는 독기들이 사라져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직까지 얼핏보면 몇달전의 내 방의 상태와 비슷해보이지만 공간이 미세하게 정리해서 좀 비어있는 구석이 있다. 미련없이 내놓는 물건들은 후회가 없지만 아직 버리면 후회할거같은 물건들은 가지고 있고 고민하고있다. 냉정히 말해서 안쓸거같지만 또 없어지면 아쉬울거같아 손에 쥐고있다. 그러나 언젠가 내보낼것을 알고있으니 헤어질 준비가 다 되면 미련없이 내보낼수 있을거같아 조금 기다려보기로한다. 1년후의 내 방을 꿈꾸며 즐거워해보는건 오랜만이다.

최근 미니멀리스트와 미니멀리즘, 미니멀라이프같은 단어들이 예능과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쏟아져나오면서 꼭 그렇게 살아야하는것처럼 강요아닌 강요하는 시대에 있는거같다는 느낌에 기피하고 멀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내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것이 미니멀이라는것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해가는게 너무 즐겁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도 후에는 다시 맥시멀하게 살고싶다 생각이 들수있고 다시 물건을 채워넣을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물건이 내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주지않는다는것을, 맥시멀하게 살아갈때에는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할 물건으로만 채울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행아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될것이다.